신명기는 ‘가나안’이라는 약속의 땅을 향해 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광야의 삶은 불확실한 미래로 인한 불안감과 염려, 두려움을 불러일으켰다. 그들에겐 ‘과연 가나안 땅에는 도착할 수 있을까?’ ‘가나안 땅을 정복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팽배했다. 그때 하나님은 그들의 미래에 대한 축복의 기준을 분명히 말씀하시며, 복된 길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제시하셨다.
생존이 보장되지 않는 광야에서
광야는 생존이 보장되지 않는 곳이다. 성벽이 없으므로 밤이면 맹수가 들이닥칠 위험이 있었고, 외부의 적들에게 공격당할 수도 있었다. 식량을 스스로 조달할 수 없는 환경이었기에, 출애굽 당시 가지고 온 양식이 떨어지면 생존 자체가 어려운 곳이었다. 더군다나 팔레스타인 광야는 극심한 일교차로 인해 낮에는 타는 듯한 더위가, 밤에는 매서운 추위가 찾아왔다. 경작이 불가능한 땅,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자원이 전혀 보장되지 않은 곳, 바로 그곳이 이스라엘 백성이 마주한 광야였다.
광야는 사방을 둘러보아도 길이 없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 척박한 환경이었다. 어쩌면 우리의 인생도 이러한 광야와 다를 바 없지 않은가. 내일을 알 수 없는 불확실함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우리 힘으로 개척할 수 없는 순간을 수도 없이 마주하는 게 인생이다.
하지만 이런 광야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은 이스라엘을 향한 약속이 되었으며, 길을 여는 진리가 되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인생길에서도 하나님은 명확한 약속의 말씀을 주신다.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의 말씀을 주셨던 것처럼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말씀하고 계신다.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 모든 일이 잘 풀리고 복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세상은 대부분 세속적 성공을 강조한다. 자신의 노력과 능력으로 목표를 달성하고 부와 권력을 얻는 것이 세상적인 복이다.
그러나 성경이 말씀하는 복은 신본주의적인 삶에서 나온다. 하나님은 복과 저주의 길을 구분하여 말씀하셨다(신 28:1-14; 28:15-68). 복은 단순히 세속적인 성공이 아니다. 성경적인 복은 철저히 하나님 중심적인 신앙에서 비롯된다. 복의 근원은 오직 하나님께 있다. 그분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것이 진정한 형통의 길이다. 즉 형통의 소망은 철저한 ‘하나님 중심주의’ 신앙에서 출발한다.
삶의 형통은 내가 가진 힘, 경험, 지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형통은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 임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 중세 유럽에서 유래했다는 “갓 블레스 유(GOD Bless You)”라는 인사말도 복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음을 내포하고 있다.
순종을 통해 임하는 형통의 복
형통의 복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성과 영원성을 지닌 복이다. 물질적이고 현세적인 복이 유한성을 가진다면 형통의 복은 영적이고 내세적인 차원의 복이다. 가장 큰 복은 ‘지속성과 영원성’에 있다. 지속성은 자녀와 후손들에게까지 이어지는 복을 의미한다. 그리고 영원성은 신앙이 계승되고 하나님 나라까지 이어지는 복이다.
또한 하나님이 약속하신 형통의 복은 특정한 영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친다(신 28:5-6, 8). 형통의 복은 단순히 물질적인 풍요에 국한되지 않는다. 영적인 유산과 신앙의 계승,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축복까지도 포함하는 복이다.
그렇다면 형통의 복은 어떻게 임하는가? 그 원리는 단순하다. ‘들음’과 ‘행함(순종)’을 통해 형통의 복이 임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지켜 행할 때 복이 임하는 것이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신 28:1)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축복이 ‘들음’과 ‘행함’이라는 단순한 순종을 통해 온다는 진리를 강조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겸손히 무릎 꿇고 그 말씀을 따라 실천하는 것이 복의 길이라는 것이다.
나는 이 말씀을 평생 붙들며 살아왔다. 형통의 복은 우리의 노력이나 인간적인 지혜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할 때 주어지는 축복이다. 우리의 삶에 임하는 모든 형통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항상 기억하며 살아가야 한다.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러나 순종의 삶을 통해 그 구원은 완성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 순종은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증명이자 삶의 실천이다.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 3:36)라는 말씀은 믿음과 순종의 상관관계를 명확히 보여준다. 이 말씀은 우리의 삶이 불순종으로 이어질 때 진정한 영생을 누릴 수 없음을 경고한다. 이는 불신앙이 곧 불순종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의미하며, 순종은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구체적인 표현임을 뜻한다.
야고보서 2장에서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헛것이라고 가르친다(17-22절). 믿음은 순종을 통해 온전해지며, 순종의 순간은 곧 하나님의 테스트임을 보여 준다. 순종은 때로 어려움을 동반하지만, 이를 통해 신앙은 증명되고 하나님이 준비하신 형통의 통로가 열리게 된다. 순종은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며 살아가겠다는 신앙의 선언이다.
성경에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의 비유가 나온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종은 다섯 달란트를 더 남겼고, 두 달란트를 받은 종도 두 달란트를 더 남겼지만,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대로 땅에 묻어 두었다. 그 결과, 주인은 한 달란트를 뺏어 열 달란트를 가진 종에게 주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축복의 원리이다. 이처럼 순종하는 자는 더욱 큰 형통을 경험하게 된다.
하나님이 부여하신 리더십을 회복하라
“땅의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이름이 너를 위하여 불리는 것을 보고 너를 두려워하리라”(신 28:10)라는 말씀에서 언급한 ‘두려움’은 단순한 공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에게 주어진 권위와 리더십을 뜻한다. 인간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창 1:28)라고 명하신 하나님의 말씀도 리더십에 대한 약속이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들은 이러한 리더십을 부여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많은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신뢰받지 못하며 리더십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는 단순히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세상이 교회를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는 교회가 본래의 영적 리더십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세상은 탈종교화 시대를 맞이하였다. 기독교는 다른 종교와 비교해도 우월하다고 말할 수 있지만 세상은 교회를 존중하지 않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랑과 거룩함을 요구하신다.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해 희생시키심으로 사랑과 거룩함의 절정을 보여 주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도 세상 속에서 사랑과 거룩함을 나타내야 한다. 예수님이 희생을 통해 사랑을 보이셨듯이, 우리도 희생적인 사랑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세상에 증명해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오늘날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조차 신앙의 본질을 잃고 행동보다는 말만 앞세우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세상으로부터 “예수쟁이들은 말만 잘한다”라는 비난을 듣곤 한다. 이는 성경 속 바리새인들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그들은 늘 말로만 가르치며, 정작 행함이 따르지는 않았다. 그들의 위선적인 모습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오늘날 교회는 신앙의 거룩함을 잃어 가고 있다. 신앙을 가진 사람들조차 세상의 가치관을 따라가며 죄와 타협한다. 우리는 소돔과 고모라처럼 도덕적 타락과 성 윤리의 붕괴가 일반화된 시대에 살고 있다. 세상 속에서 신앙을 지킨다고 하지만, 어느 순간 죄와 타협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의 말씀을 따라 살아갈 때 우리에게 ‘하늘의 보고(寶庫)’를 열겠다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한두 번의 복이 아니라 언제든지 주어지는 하나님의 형통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여시면 닫을 자가 없고, 하나님이 닫으시면 열 자가 없다. 그러므로 순종이 곧 형통이며, 형통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 때 가능한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하나님이 나에게 “교회 밖에 교회를 세우라”라는 음성을 주셨다. 미리 책정된 예산이 없었지만 교회 주변 상권과 어려운 이웃을 섬겨야 한다는 거룩한 부담감을 품고 순종했다. 그 결과 하나님이 우리 교회에 더욱 크고 놀라운 은혜를 부어 주셨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주시는 형통의 원리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예상치 못한 길이 열리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더욱 큰 복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